윈슬로우 호머는 바다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이며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미국화가로 여겨집니다. 그의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 풍경, 그리고 일상생활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묘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윈슬로우 호머는 보스턴에 태어나 캠브리지의 시골에서 자란 그는 처음에는 보스턴에서, 그 후 1859년 정착한 뉴욕에서 상업판화가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1861년 봄에 유화를 공부하던 중 10월에 삽화잡지 하퍼스 위클리의 예술특파원으로 버지니아의 전선에 보내졌습니다.
1863년경의 호머의 남북전쟁 그림들은 그때의 경험을 보여주며 전쟁이 끝나갈 무렵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된 "전선에서 온 포로들" "새로운 들판의 베테랑"등의 작품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1860년대 후반과 1870년대는 그에게 예술적인 실험으로 다작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는 잡지 삽화를 디자인하고 화가로서 명성을 쌓으며 뉴욕에 거주하며 매사추세츠, 뉴저지의 해변 휴양지등에서 그림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근 10년 동안 유화를 그리며 성공하여 1875년에는 프리랜서 삽화가의 작업을 그만두고 그림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그의 대표작품인 전선에서 온 포로들은 1866년 작품으로 미국의 남북전쟁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전쟁이 끝나 후 그의 뉴욕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그려진 것으로 1864년 버지니아주 스포츠실 베니아에서 남부군 사단을 점령한 연방군 장군인 호머의 친구 프랜시스 채닝 발로우의 영웅적 행동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폐허가 된 남부 풍경을 보여줘 그들의 대립을 나타내고 단정한 제복을 입은 우아한 장교와 흐트러진 복장에 어딘가 지쳐 보이는 포로들의 모습을 보여 계급차이를 암시했습니다. 1869년 비평가 유진 벤슨은 이 그림이 전쟁 전체를 묘사하기 위한 특정 사건을 초월했다고 말하면서 포로들이 "공격적이지 않은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사회적 요소들을 나타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이 뛰어놀며 끈으로 손을 잡고 돌아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순발력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그가 1872년에 그린 유일한 오일 페인팅입니다.
붉은색의 학교 건물 앞에서 아이들이 "Crack the Whip"이라는 게임을 하는 모습인데 이 게임은 아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돌아가며 뛰는 게임으로 끝에서 뛰는 아이들이 힘이 부족해 손을 놓게 되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아이들의 놀이와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면서도 그 안에 있는 여러 가지 미묘한 긴장과 연결이 담겨있습니다.
맨발의 소년들은 결단력 있고 투박하고 활기찬 자연 속에 있으며 국가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상징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튀어나온 한 아이를 통해 앞으로의 도전을 암시하지만 그들의 팀워크는 전쟁 후 국가를 재결합시키는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입니다. 장면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국가가 농업적인 과거로부터 도시화의 미래로 옮겨가고 있는 시점에서의 작은 빨간 건물의 시골학교는 아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북동풍은 미국 동부 연안에서 발생하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폭풍으로 호머가 말년 해안지대에 거주했을 당시인 1895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처음 전시했을 때는 왼쪽 아래의 바위에 웅크리고 있는 두 명의 인물을 포함했으나 1901년 두 번째 전시에서는 인간의 존재를 없애고 파도로부터 물보라를 강화했습니다. 순수한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강조라는 시선으로 높이 평가되었고 비평가는 "바위의 견고한 힘, 무겁고 장엄한 바다의 움직임, 그리고 징벌적인 사람의 존재로 표시되지 않은 거대한 자연공간의 큰 분위기"로 표현하며 감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