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화가와 그의 그림 - 프랑스와 파스칼 시몽 제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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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화가와 그의 그림 - 프랑스와 파스칼 시몽 제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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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하늘 2023. 10. 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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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파스칼 시몽 제라르는 궁정화가로 많은 초상화와 역사화를 남긴 프랑스 화가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대사의 비서로 로마에서 일하고 있었고 이탈리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여러 조각가와 화가들에게서 예술을 공부했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은 신고전주의운동의 지도자인 자크 루이 다비드였습니다. 제라르는 그 시대의 유명인들의 초상화로 유명해졌는데 특히 프랑스 제1제국시대의 나폴레옹, 조세핀, 오스트리아의 마리 루이, 루이 18세, 샤를 10세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또한 큐피드와 푸시케, 다프니스와 클로에 그리고 앙리 4세의 파리 입성 같은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장면들을 그리기도 했으며 1809년 나폴레옹에 의해 재국의 남작 칭호를 받았으며 그 외에도 많은 훈장과 상을받았으며 그의 많은 작품들은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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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 대표 작품 - 큐피드와 프시케

큐피드와 프시케/위키피디아

 

 

큐피드와 프시케는 1798년 제작된 그림으로 큐피드와 프시케의 고대 신화에서 사랑의 신이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공주 프시케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예술과 문학에 영향을 받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그림으로 제라르는 선도적인 신고전주의 화가이자 스승인 자크 루이 다비드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그림의 특징은 인체의 비례에 대한 화가의 안목을 보여줍니다. 큐피드와 프시케의 인물들은 이상화되고 우아하여 매끄러운 피부와 부드러운 곡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읜 형이상학적인 우화뿐 아니라 관능미와 낭만적인 감각을 표현하며 프시케는 인간의 영혼을 큐피드는 그것을 활기차게 만드는 열정과 욕망을 나타냅니다. 프시케의 머리 위의 나비는 근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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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 대표 작품 - 앙리4세의 파리 입성

앙리4세의 파리 입성/위키피디아

이 작품은 프랑스 왕 앙리4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종교전쟁으로 알려진 내전을 끝낸 후 1594년 3월 22일 파리에 성공적으로 도착한 것을 묘사한 역사적인 그림입니다. 부르봉 왕정의 회복을 축하하고 입헌적이고 관용적인 정부를 홍보하는 방법으로 1815년 루이 18세에 의해 의뢰되었습니다. 성직자, 의회, 파리의 국민의 대표자, 충실한 귀족과 군인들에게 둘러 싸인 백마를 타고 있는 앙리 4세를 보여줍니다. 왕은 그의 상징물인 하얀 깃털과 함께 깃발과 현수막을 흔드는 군중들의 환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의 군사적 기량, 관대함, 국민들에 대한 사랑과 같은 그의 업적과 미덕을 보여줍니다.

이 그림은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들의 감탄을 받았고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베루사이유에 있는 바타유 갤러리로 옮겨졌습니다. 또한 이 그림은 다른 예술가들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이를 언급하며 '모든 찬사를 뛰어넘는 웅장함을 가진 장엄한 그림'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제라르 대표 작품 - Belisarius

벨레사리우스/위키피디아

 

 

 

 

이 작품은 1797년에 그려진 그림으로 서기6세기에 살았고 유스티나아누스 1세 황제 아래에서 복무했던 유명한 비잔틴 장군 벨리사리우스의 삶의 한 장면을 묘사합니다. 그는 로마 제국에 의해 상실된 땅을 재탈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반란, 전염병, 반역죄와 같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또 그는 눈이 멀었으며 자신에게 대항하는 음모를 꾸민 것으로 의심했던 황제에 의해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그는 같은 주제의 그림인 1618년의 루벤스의 스케치응 바탕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동이 트는 어두운 배경과 전경의 인물들 사이의 대비를 만들기 위해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상의 조명을 사용하고 특히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에 관심을 기울여서 눈이 먼 장군의 표정에서 많은 회환과 고통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때 역사적 충실함, 도덕적 교훈, 예술적인 장점으로 큰 찬사를 받았으며 어떤 이들은 벨레사리우스를 폭정, 불의, 희생자로 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충성, 용기, 애국심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